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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우리는 서로를 돕는 멍청한 개미이다.

by For the Universe 2022. 8. 26.

 

 라이프로깅 메타버스에 올라오는 글들은 말 그대로 누군가의 라이프로그, 생활에 관한 기록입니다. 신중하게 내용을 다듬어서 올리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리 길지 않은 글을 약간 정리해서 올립니다. 그런 포스팅 글을 보고, 라이프로깅 메타버스에 처음 오신 분들은 ‘이런 사람들과 어울려서 무슨 득이 될 게 있다고 이런 걸 하지? 소셜미디어를 쓰는 건 역시 인생 낭비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만약, 당신이 가입한 소셜미디어에서 당신의 친구로 등록된 이들이 세계적 기업의 경영자, 저명한 학자라면 어떨까요? 당신의 생각은 많이 달 라질 겁니다. 그렇다면 유명한 경영자나 학자가 아닌 라이프로깅 메타버스 속 친구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일까요?

  히로시마대 수학과 니시모리 히라쿠 교수의 실험을 잠시 들여다보겠습니다. 히라쿠 교수는 화학, 생물, 사회과 학적 영역에서 다양한 현상을 확률과 통계분석으로 규명하는 연구를 하며 15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히라쿠 교수의 연구 중 개미집단의 이동을 시뮬레이션하는 실험이 있습니다. 개미가 집단을 이뤄서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것을 관찰하는 시뮬레이션 실험입니다. 늘 그렇지만 큰 집단이 방향성을 잡고 한쪽으로 이동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리더를 잘 따르는 개미, 옆으로 빠지는 개미, 심지어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는 개미까지 있을 수 있겠네요. 히라쿠 박사는 바로 이 부분을 궁금해했습니다. 길을 잘 찾지 못하는 개미들이 포함된 집단, 그렇지 않은 집단, 이렇게 두 그룹을 비교할 때 어떤 그룹이 목표 지점에 빠르게 도착하는가를 관찰했습니다. 결과는 의외로, 길을 잘 찾지 못하는 개미들이 포함된 집단이 더 빠르게 도착했습니다. 물론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해서 얻은 평균값이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멍청한 개미가 집단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주었을까요? 멍청한 개미는 때로 샛길로 빠지기 일쑤입니다. 얼핏 보면 샛길로 빠지는 개미가 내게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겨지지만, 그 빠진 샛길이 때로는 지름길이 되거나, 그 길에서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배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면, 우리에게 샛길로 빠지는 조금 멍청한 개미는 의미 있는 동반자입니다. 라이프로깅에서 당신이 보는 누군가의 포스팅 또는 당신의 포스팅에 남겨진 누군가의 피드백이 때로는 멍청한 개미의 흔적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누군가는 당신의 포스팅이나 피드백을 그렇게 여길지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라이프로깅 메타버스에서 우리는 때로 서로에게 멍청한 개미 역할을 해줘도 좋습니다. 그래야 그 메타버스에서 우리는 장기적으로 더 많이 성장합니다.

  멍청한 개미 따위의 의견, 그런 개미와의 소통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얘기를 좀 더 들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비행기를 운항할 때 조종실에는 기장과 부기장이 함께 있습니다. 장거리를 한 명이 끝까지 조종하기는 어려워서, 이 둘은 서로 번갈아 가며 조종 책임을 맡는다고 합니다. 부기장에서 기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보통 4~ 10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만큼 기장은 부기장보다 더 많은 비행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 기장과 부기장 중에서 누가 조종 책임을 맡는 상황에서 항공기 사고가 더 많이 발생했을까요? 답은 의외로 기장이었습니다. 기장은 더 오랜 비행 경력과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지만, 부기장보다 사고를 많이 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그리 특별한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현실 세계, 아날로그 지구에서 우리는 나보다 경험이 많은 이, 나이가 많은 이에게 쉽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문화 때문에 기장 이 조종관을 잡았을 때 부기장은 자신의 의견을 잘 말하지 못합니다. 비행 시뮬레이터를 활용한 실험의 결과는 더 충격적입니다. 기장이 조종관을 잡고 활주로에 착륙하는 도중 정신을 잃은 듯이 행동한 상황에서, 부기장 중 1/4은 기장의 조종관에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1999년 12월 22일에 발생했던 대한항공 8509편의 추락사고도 같은 맥락입니다. 밀라노를 향해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이륙 1분 만에 숲으로 추락했습니다. 당시 기장이 조종관을 쥐고 있었고, 부기장은 사고 징후를 간파했으나, 기장은 부기장의 의견을 무시했습니다. 반대 상황에서는 어떨까요? 조종관을 잡은 부기장에게 기장은 옆에서 이런저런 말을 합니다. 그런 조언이 부기장의 사고 확률을 낮추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기장 입장에서 부기장은 자신보다 덜 성숙한 개미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개미들이 서로의 의견을 들어줬듯이 기장은 부기장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런 상황은 교실에서도 비슷하게 발생합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교사로부터 무언가를 배웁니다. 그런데 나와 같이 공부를 하는 친구들은 내 학습에 별 도움이 안 될까요? 두 방법을 비교해봅시다. 첫 번째 방법은 모든 설명을 교사만 하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교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배운 내용을 친구들과 서로 바꿔가며 설명해 보거나, 모르는 내용을 친구에게 물어보는 방법입니다. 이 둘의 학습 성과를 비교한 다양한 연구에서 두 번째 방법의 효과가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잘 정돈된 지식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교사의 지도 방법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만, 좀 어설프더라도 나와 감정적으로 연결된 내 친구들이 자신의 의견을 섞어서 다양한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을 듣다 보면 더 깊게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뉴잉글랜드대의 몰리너와 알레그리가 10대 초중반 학생 376명을 대상으로 수학 교과목에서 진행한 실험을 보면, 친구들로부터 배우는 동료 학습에서 학습 성과가 13.4%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런 효과는 교사로부터 한번 설명을 들었으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두 번째 설명을 다시 교사에게 들을 것인지, 아니면 그 내용을 이해한 친구에게 들을 것인지와 관련된 비교 연구에 서 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아직 그 내용을 깊게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친구가 설명하는 경우에 두 번째 설명의 효과가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현실 세계의 관계와 소통 방식을 그대로 메타버스에 옮겨놓으려고만 한다면, 그 메타버스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메타버스에서 여러 개미를 만나고, 부기장의 의견도 세심하게 들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