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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디지털 테라포밍:호모 사피엔스, 파베르, 루덴스 & 데우스

by For the Universe 2022. 8. 25.

  테라포밍은 지구화, 행성 개조정도로 해석되는 용어입니다. 지구가 아닌 우주의 다른 행성을 인간이 사는 지구와 비슷한 환경으로 바꾸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메타버스, 디지털 지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테라포밍과 비슷합니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았던 공간, 디지털 공간에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짧게 살펴보겠습니다.

 

  현생 인류,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을 지칭하는 대표적 표현은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문헌마다 차이가 있으나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한 시기는 대략 7~20만 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지구상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는 한동안 아프리카 대륙에 머물면서 큰 발전이 없었으나, 대략 3 만 년 전인 빙하기 말기에 돌을 가지고 여러 도구를 만들고, 큰 집단으로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합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비약적인 발전, 그 배경에는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사냥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집단을 지킬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는 과정,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고안하는 사고력과 생각의 결과를 언어로 소통하는 능력을 통해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현대 교육의 큰 틀은 바로 이런 호모 사피엔스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앞선 이들이 정리해 놓은 생각의 틀(이론, 공식, 법칙 등)을 익혀서 내 생각에 사용할 수 있을까?

 

  19세기 초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인류를 지칭하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합니다. 도구를 만들고 활용하는 인간, ‘ 호모 파베르’ 입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없던 것을 상상하고, 그 상상을 동료들에게 전파하는데 집중했다면, 호모 파베르는 상상의 결과를 눈에 보이는 도구로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도구를 활용해서 다양한 재화를 더 빨리, 싸게, 많이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19세기 이전까지 아프리카, 남미, 북미, 유럽 지역의 각 국가별 GDP 증가율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호모 파베르적 접근으로 다양한 산업화 도구의 제작과 활용에 집중한 미국, 서유럽의 GDP 증가율은 다른 지역 국가들을 압도하며 가파르게 증가했습니다. 전화, 전구, 비행기, 반도체, 인터넷, 광섬유 등 현대 문명을 대표하는 것들은 모두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던 2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인류 역사를 1미터 정도의 그래프로 요약한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도 구, 기술들은 마지막 1밀리미터 안에 그려지는 셈입니다.

 

  2018년 통계청은 흥미로운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근대 발명품 중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조사해서 공개했습니다. 1위는 조금 의외일 수 있으나, 냉장고였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인터넷, 컴퓨터, 세탁기, 텔레비전 순으로 2~5위에 위치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퀴즈를 내겠습니다. 2, 3, 5위에 위치한 것들을 하나로 묶으면 뭐가 될까요?

 

  그리고 이 물음표에 해당하는 물건을 좀 더 넓게 생각해보면 1위 냉장고, 4위 세탁기의 역할까지 대체가 가능합니다. 많은 분들이 눈치를 채셨으리라 짐작합니다. 바로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물건, 내 몸에서 절대 멀리 두지 않는 물건, 명품을 제외하고는 내가 외출할 때 소지하는 가장 비싼 물건인 스마트폰입니다. 5인치 내외 화면 크기의 스마트폰 한 대의 가격이 900리터 용량의 냉장고, 50인치 텔레비전과 맞먹거나 비싸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현재 소지하고 있는 모든 물건을 종이에 적어보라고 합니다. 옷과 신발을 포함해서 가방에 들어있는 지갑, 책, 화장품, 스마트폰 등을 다 적게 합니다. 그런 후 목록에 있는 물건을 하나씩 버리는 실험을 진행해보면, 속옷을 제외하고는 거의 마지막까지 남는 물건이 스마트폰입니다. 21세기 초에 등장한 스마트폰은 이제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라 현생 인류의 신체 일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내 몸을 내 것으로 인식하고, 내가 직접 움직일 수 있는 것을 신체 자각이라고 칭하는데, 스마트폰은 현대인의 신체 자각 범위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싸고, 내 몸의 일부처럼 다루는 물건인 스마트폰으로 현대인은 주로 무엇을 할까요? 스마트폰 세상의 중심에 있는 기업인 애플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2020년 9월 기준으로 시가총액 2,250조 원을 넘어서서 세계 수 많은 기업들 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 애플은 앱스토어에서 매년 천문학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2019년 기준으로 대략 58조 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익은 대략 17조 원 정도에 달합니다. 그러면 애플 앱스토어에서 사람들은 주로 무엇을 다운로드할까요? 한국, 미국, 유럽, 세계시장별로 통계를 살펴보면, 그 결과는 국가, 지역별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운로드 수 상위 1~20위권 앱 중 70% 정도는 게임이고, 나머지 30% 정도는 주로 소셜미디어, 동영상 스트리밍 앱들입니다. 물론 다운로드 순위가 앱스토어 매출과 정비례하지는 않 습니다. 앱 내부 결재인 인앱결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계인들이 스마트폰을 주로 게임, 소셜미디어, 동영상 스트리밍에 활용한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그 귀중한 물건인 스마트폰을 왜 주로 게임과 소셜미디어, 동영상 스트리밍에 사용할까요? 그런 활동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쯤에서 현생 인류를 지칭하는 세 번째 키워드인 ‘호모 루덴스’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호모 루덴스는 네덜란드 역사, 철학자인 요한 하위징아가 현생 인류를 지칭하기 위해 만든 말입니다. 인류의 역사, 인간 의 모든 활동과 상호작용에는 기본적으로 놀이, 즐거움이 깔려있다는 의미입니다. 현재와 같은 스마트폰, 컴퓨터 , 게임기가 없던 시절, 심지어 원시시대에도 인간은 사냥과 생존 이외에 놀이를 즐겼습니다. 원시 시대 동굴 벽화에는 춤을 추거나, 동물 가죽을 뒤집어쓰고 무언가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인류는 그런 놀이를 잘 즐기기 위해, 놀이 과정에서 다툼을 피하기 위해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규칙을 준수하며 놀아야 억울한 사람 없이 모두가 즐겁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놀이를 위해 규칙을 만들고 즐기던 행위가 집단 사회에 필요한 규칙, 법을 만드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놀이를 위해 규칙을 만들고 지켰던 약속이 문화가 되면서, 사냥을 할 때 어떤 규칙을 지킬지, 사냥한 고기와 채취한 물건들을 서로 어떤 규칙으로 나눌지를 서로 약속하고 지켜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집단 사회별로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노는지가 달랐는데, 이러한 차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집단 사회마다 서로 다른 문화를 형성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요컨대, 인간은 태생적으로 놀이를 좋아했으며, 더 잘 놀기 위해 규칙을 만들었고, 그런 규칙이 집단 사회의 규범, 법, 문화를 형성한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이런 흐름은 메타버스의 형성 과정에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증강현실 세계, 라이프로깅 세계, 거울 세계, 가상 세계의 네 가지 메타버스 중 가장 먼저 등장했고, 다양성과 규모 면에서 성장 속도가 제일 빠른 메타버스가 가상 세계입니다. 가상 세계 메타버스의 효시이자 대표 사례는 온라인 게임입니다. 놀이를 좋아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는 인류 최애 도구인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을 가지고 온라인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으며, 온라인 게임 문화가 가상 세계를 포함한 메타버스로 확장해갔습니다.

 

  가상 세계를 포함한 다양한 메타버스를 스스로 창조하면서 인간은 또 다른 존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호모 루덴스인 인류가 창조하고 있는 메타버스에서 인간은 호모 데우스가 되고 있습니다. 호모 데우스는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인 유발 하라리가 2015년도에 발표한 책에서 언급한 개념인데, 여기서 데우스는 신을 뜻합니다. 즉, 호모 데우스는 신이 되려는 인간을 의미합니다. 21세기는 역사상 매우 특이한 시기입니다. 굶어 죽는 사람보다 과식과 비만으로 죽는 사람이 많으며,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보다 노화로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20만 년 역사상 이런 시기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기본적인 욕구와 안전을 지켜낸 인류는 보다 높은 가치를 원합니다. 바로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삶입니다. 이는 종교적 관점에서 신의 영역에 해 당합니다. 아날로그 지구에서 인류가 영원한 행복과 삶을 누릴 수 있을지, 그게 언제일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꿈을 인류는 이미 메타버스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메타버스에 인류는 자신들이 생각한 세계관, 생명체, 자원, 환경 조건 등을 설정해서 운영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창조한 인공지능 캐릭터와 인간들이 함께 어울려서 지냅니다. 가히 호모 데우스다운 놀이터를 메타버스에 만든 셈입니다.